박완서| 열림원 | 2007.01.29
영성체
전에 다같이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였다. 그때 옆의 사람이 남편이란 걸 깜박 잊고 무심히 평화의 인사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. 아니 이 사람이 누구지? 나는 그 낯익은 얼굴이 처음 보는 이웃보다 더 낯선 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. 보통 때 나란히 앉은 교우끼리 또는 앞뒤로 앉은 교우끼리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, 미사만 끝나면 뿔뿔히 흩어져 남이 되는 교우 끼리지만 그때만은 서로 친애감을 확인하고 축복을 교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. 나처럼 주일미사 나가는 것 말고는 봉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은 교우들 얼굴을 익힐 새도 없기 때문에 그때만이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고 또 좋은 표정과 만나고 싶어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짓다 보면 상대방도 조금도 낯설지 않고 어디서 본 듯한 착한 이웃으로 다가온다. 비록 잠깐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도 서로 낯설지 않게 맺어주는 귀한 친교의 시간에 평생을 같이 산 사람에게 느낫없이 낯가림을 한 것은 무슨 조화일까. 아니, 저 사람이 누구지? 저 초라한 중늙은이는 누구란 말인가? 나는 내 남편의 낯섦에 놀라 표정이 굳어졌다. 그가 난 줄 알고 살아왔다. 그는 뭐든지 나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. 가족을 위해 고달프게 돈을벌고, 아이들에게는 믿음직스럽게 굴어야 하는 가장이었다.
그가 번 돈은 내 돈이었고 내 생각은 그의 생각도 된다는 걸믿어 의심치 않았다. 순간적인 돌연한 낯섦이 이런 나의 관습적인 생각에 충격이 되었다. 내 모과 동일시하는 데 익숙해져 있던 남편을 독립된 타자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톨릭을 믿고 나서 유일하게 경험한 신비체험이다. p173~174
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나도 내 자식이 문 열고 나가 부딪힐 몇 겹의 이 세상이 아이들에게 우호적이길 바랐다. 아이들은 자라면서 아마 점점 비우호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. 그렇더라도 간판을 읽으면서 배운 친절과 배려, 그림책을 읽으면서 상상한 동물과 식물 곤충하고까지 소통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한없이 놀랍고 아름답고 우호적인 세상에 대한 믿음이 힘이 되길 바랐다. P215
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
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
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
다 지나간다
만추
꽃 출석부 1
꽃 출석부 2
시작과 종말
호미 예찬
흙길 예찬
산이여 나무여
접시꽃 그대
입시추위
두 친구
우리가 서로에게 구인이 된다면
그리운 침묵
내 생애에서 가장 긴 8월
그리운 침묵
도대체 난 어떤 인간일까
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
야무진 꿈
운수 안 좋은 날
냉동 고구마
노망이려니 하고 듣소
말의 힘
내가 넘은 38선
한심한 피서법
상투 튼 진보
공중에 붕 뜬 길
초여름 망필(妄筆)
딸의 아빠, 아빠의 엄마
멈출 수는 없네
감개무량
그가 나를 돌아보았네
그는 누구인가
음식 이야기
내 소설 속의 식민지시대
그가 나를 돌아보았네
내가 문을 열어주마
내가 문을 열어주마
우리 엄마의 초상
엄마의 마지막 유머
평범한 기인
중신아비
복 많은 사람
김상옥 선생님을 기리며
이문구 선생을 보내며
딸에게 보내는 편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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